[먹을 당(口/12) 술 주(酉/3) 지게미 조(米/11) 한수 한(氵/11)]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얼치기가 일을 망친다. 진짜를 교묘하게 모방하여 행세를 할 때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냥 넘어간다. ‘가짜가 진짜를 뺨친다’는 속담은 실제 재주를 가진 사람보다 더 잘 포장하여 큰소리친다는 뜻이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니 화려한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면 낭패 본다.
불교에서 깨우치는 말로 순수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을 혼내는 성어가 있다. 술을 마신 듯이 행세하지만(噇酒) 실제는 술지게미만 먹은 놈(糟漢)이란 어려운 글자를 썼다. 禪(선)의 진수이고 선 문학의 선구라고도 평가받는 ‘碧巖錄(벽암록)’에 일화가 실려 있다.
심오하고 진지한 선승들의 話頭(화두) 100개를 담아 선가에서 남달리 귀중한 문헌으로 애송되어 왔다는 벽암록은 중국 宋(송)나라의 선승 圜悟克勤(원오극근, 圜은 두를 환, 둥글 원)이 편찬했다. 이 책 제11칙에 黃檗噇酒糟漢(황벽당주조한)이란 제목으로 황벽선사가 무명승을 꾸짖는 데서 이 말이 등장한다.
檗은 황벽나무 벽. 황벽은 希運(희운) 선사를 가리키는데 법을 이어받은 百丈懷海(백장회해) 선사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禪傑(선걸)로 꼽힌다고 한다. 특히 그의 문하서 위엄 있게 꾸짖는 喝[할]로 유명한 臨濟義玄(임제의현)이 배출되어 명성을 더한다.
황벽이 唐(당)나라에 많은 선승이 모두 젠체하지만 실제진정한 선을 지도할 선승은 없다고 비판한다. ‘그대들은 모두가 술지게미만 먹고 진짜 술을 마신 듯이 흉내 내는 녀석들이다(汝等諸人 盡是噇酒糟漢/ 여등제인 진시당주조한).’ 진짜 술이 아닌 지게미만 먹는다고 喫酒糟漢(끽주조한)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당시 속어로 ‘척하는 머저리 같은 놈’이란 뜻이란다.
선수행을 하면서 불법의 대의를 철저하게 체득하지도 못하고 어록을 대충 이해한 주제에 진짜 대단한 선승처럼 행세하는 사이비 선승을 매도했다. 이어서 건들건들 수행하며 언제 불법을 닦을 수 있겠느냐며 당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혼을 냈다.
황벽선사는 전국의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는 선승들이 많다는 스님의 항의에 선은 있는데 선사가 없다고 답한다. 불법을 체득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선사의 가르침과 지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본인이 자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깨우쳤다.
뜻이 있어 자신이 깊이 닦으면 그것이 절로 드러나는 법인데 다 깨달은 듯이 중간에서 행세를 하면 들통이 난다. 성급하게 자신을 과시하기 보다는 내실을 더욱 다질 일이다. 진짜 금인 순금은 도금을 할 필요가 없다고 眞金不鍍(진금부도)라 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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