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어모음

살풍경(殺風景)

한국어자문회 2021. 9. 30. 07:30

- 메마르고 삭막한 풍경, 꼴불견 행위나 그런 짓을 하는 사람

[죽일 살(殳/7) 바람 풍(風/0) 볕 경(日/8)]

자연의 모습이나 어떤 정경을 나타내는 風景(풍경)에 죽일 殺(살)이 붙었다고 무시무시한 것은 아니다. 경치를 실제 파괴하는 것은 아니고 정취 없는 메마른 풍경이나 어떤 분위기가 삭막하다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런 모습은 그래도 고개만 돌리면 그만인데 그렇지 못한 꼴불견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갓 쓰고 자전거 타기’, ‘남이 은장도를 차니 나는 식칼을 낀다’는 행위는 주견이 없고 주위 환경과 형편에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주변에 피해는 주지 않는다. 하는 짓이 도덕적인 기본 질서를 무시하고 眼下無人(안하무인)의 행태를 자행한다면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처음으로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나열한 사람은 중국 唐(당)나라 말기의 시인 李商隱(이상은, 812~858)이다. 전고를 인용하여 화려한 문체로 修辭(수사)문학의 극치라는 평을 듣는 그는 字(자)를 딴 ‘義山雜纂(의산잡찬)’에 다양한 꼴불견을 나열했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소개로 일반에도 널리 알려졌다. 모두 16가지나 되는데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온다고 하고 관점에 따라 심하게 지탄받지 않을 내용도 있다. 그 중에서 순서는 관계없이 오늘날에도 머리 끄덕여지는 몇 가지만 살펴보자.

꽃을 감상하다가 눈물을 짜는 행위 看花淚下(간화누하)는 감정이 풍부하다고 하고, 꽃을 보다 말고 차를 홀짝거리는 對花啜茶(대화철다, 啜은 마실 철)는 너무 무디다고 하지만 꽃 위에 속옷을 걸어 말리는 花上曬裩(화상쇄곤, 曬는 말릴 쇄)은 눈 찌푸려지는 짓이다.

맑은 약수가 나오는 샘터에서 발을 씻는 행위 清泉濯足(청천탁족), 천연 이끼 위에 태연히 자리 까는 苔上鋪席(태상포석), 석순에다 무신경하게 말고삐를 매는 石筍繫馬(석순계마), 시선을 가린다고 늘어진 수양버들을 베어버리는 斫却垂楊(작각수양) 등이 따른다. 몇 가지 외에는 남에게 피해는 없이 자연 풍경을 해치기만 한다.

이런 삭막함은 애교라도 어느 정도 있지만 오늘날 어느 분야나 몰지각을 넘어 범죄행위까지 꼴불견의 극치는 수두룩하다. 도로 위의 무법자 자동차는 지시등 없이 끼어들기나 속도위반은 목숨을 담보한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행지에서의 주변을 아랑곳 않는 소음이나 쓰레기 버리기는 예사다.

항상 욕을 바가지로 먹는 정치권이 빠질 수 없다. 하는 일 없이 특권만 챙기고, 이득만 찾아 이당 저당 기웃대며 유권자와의 약속은 당선 후부터는 싹 잊는다. 꼴불견만 줄어도 사회는 맑아질 텐데 그런 세상이 오기는 할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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