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거릴 첩(口/5) 소곤거릴 섭(口/18) 귀 이(耳/0) 말씀 어(言/7)]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도록 두 사람만 귀를 가까이 소곤거리는 귓속말은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한다는 것은 남의 장단점을 함부로 떠벌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면 바로 조선 초기 黃喜(황희) 정승을 떠올린다. 길가다 소 두 마리로 밭을 가는 농부에게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는지 묻자 다가와 귀엣말로 했다는 附耳細語(부이세어)가 그것이다.
짐승이라도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 기분 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희가 좋다, 나쁘다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아 好好先生(호호선생)이 됐다. 반면 자신은 따돌리고 앞에서 두 사람이 소곤거리며(呫囁) 귀에다 대고 말을 한다면(耳語) 기분 좋을 수가 없다.
하기 쉬운 귓속말이 이처럼 어려운 성어로 나오는 곳은 ‘史記(사기)’에서다. 魏其武安侯(위기무안후) 열전에서 後漢(후한)의 장군 灌夫(관부)가 속삭이는 상대를 보고 호통 칠 때 사용됐다. 관부는 강직하고 아첨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6대 황제 景帝(경제)의 외척인 竇嬰(두영, 竇는 구멍 두)이 吳楚(오초)의 난을 진압할 때 큰 공을 세우고 이후 부자처럼 가까이 지냈다.
경제의 처족으로 이복이라 미천했던 田蚡(전분, 蚡은 두더지 분)은 처음 두영을 섬기다 7대 武帝(무제)가 즉위한 뒤 권력이 집중됐다. 세력을 잃었다고 두영에 함부로 대하는 것을 관부가 좋게 볼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사달이 벌어졌다.
전분이 권세가의 딸을 맞아 연회를 베풀었을 때 두영의 강권으로 관부도 내키지 않았지만 참석했다. 술을 좋아하는 관부가 안하무인의 전분에게 잔을 올렸을 때 주법에 어긋나게 반만 채우라고 말했다. 관부는 화가 나 씩씩거리다 옆 자리의 친척 조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폭발했다.
‘오늘 어른의 축배를 권하는데도(今日長者爲壽/ 금일장자위수), 그대는 계집애처럼 소곤대고만 있는가(乃效女兒呫囁耳語/ 내효녀아첨섭이어).’ 술자리에 참가한 고관들은 엉망이 된 분위기에 하나둘씩 떠나버렸다. 魏其侯(위기후)는 두영이, 武安侯(무안후)는 전분이 후일 봉해진 이름이다.
소곤거린다고 엉뚱한데 화를 냈던 관부는 그렇지 않아도 전분의 눈 밖에 나 있었는데 잔치를 망치고 성할 수가 없었다. 관부를 구하려 노력한 두영과 함께 전분이 누명을 씌워 처형시켰다. 관부가 분에 못 이겨 일부러 한 일이긴 해도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서 귓속말을 하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남의 험담은 물론 안 하는 것이 좋고 없는 자리서는 더욱 피할 일이다. 비밀을 지킨다고 약속한 말일수록 더욱 빨리 퍼진다고 주의시킨 말이 많다. 牆有耳(장유이)는 ‘벽에도 귀가 있다’, 晝語鳥聽 夜語鼠聽(주어조청 야어서청)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대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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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당상치(鄕黨尙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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