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어모음

구리지언(丘里之言)

한국어자문회 2021. 9. 26. 07:00

 - 민간에 떠도는 말, 근거가 없는 말의 비유

[언덕 구(一/4) 마을 리(里/0) 갈 지(丿/3) 말씀 언(言/0)]

사람들은 말의 홍수 속에서 산다. 새로운 소식이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귀를 쫑긋한다. 새 소식 news를 동서남북의 첫 글자를 모은 것과 같아서 세계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재미있게 해석하기도 한다. 또 주위의 소식은 더 늦을 수 있다고 ‘서울 소식은 시골 가서 들어라’라는 속담도 있다.

이와 같이 사방의 먼 곳, 가까운 곳 소식이 뒤섞이다 보니 전할 때마다 살이 보태져 허황한 이야기도 떠돌게 된다. 길거리에서 떠도는 이야기 街談巷說(가담항설)이나, 길에서 들은 그대로 전하는 道聽塗說(도청도설) 등이 그것이고, 악의가 가미된 流言蜚語(유언비어)는 처벌받을 수도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莊子(장자)’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성어가 있다. 작은 고을(丘里)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말(之言)이란 뜻으로 시골에서 떠도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나타낸다. 하지만 제3부의 則陽(칙양)편에서 장자는 특유의 비유로 조그만 시골 사람들의 말이라 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무한한 시공간 속에서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인간들의 지식은 미미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들이 하는 판단은 모두 일면적인데 이런 이야기도 있고 저런 이야기도 있다는 말이다. 얕은 지혜밖에 지니지 못한 少知(소지)라는 사람과 대단히 공평무사하다는 大公調(대공조)라는 사람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재미있는 부분 몇 가지만 옮겨보자. ‘동네라는 것은 수십 가지 성을 가진 사람들 수백 명이 모여서 풍속을 형성하는 곳이다(丘里者 合十姓百名而 以爲風俗也/ 구리자 합십성백명이 이위풍속야), 다른 것을 합하여 같은 것을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같은 것을 나누어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合異以爲同 散同以爲異/ 합이이위동 산동이위이).’ 언덕이나 산은 흙이 낮은 곳부터 쌓인 것이고 연못은 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모여 되듯이 한 가지 의견만 고집하지 말고, 또 다른 의견도 수용해야 공론이 형성된다는 설명이다.

조그만 시골의 이야기라고 근거 없는 말로 굳어져 통용되지만 처음에는 이처럼 각각의 의견은 존중돼야 한다는 데서 비롯됐다. 생각이 같은 사람만 옳고 다른 생각은 배척해서는 공론이 될 수 없다. 소수의 의견을 아예 뭉개버려서는 사회의 합의는 실패다. 제외해야 할 경우가 있다.

조그만 일을 針小棒大(침소봉대)하거나 적의를 가지고 가짜 뉴스를 온갖 방편으로 퍼뜨려 원칙을 뒤집으려는 시도다. 먹혀들지 않는다고 판을 깨는 세력이 교묘하게 만드는 소식은 건전한 판단으로 가려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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